일상에 대하여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

선긋기 2021. 6. 10. 05:00

동네 치킨 집에 들러 피자, 국수에 생맥 2잔을 얻어마시고 자정에 들어와 푹 자고 일어난 새벽 4시 10분...

영어팔이는 두 군데 거절당하고 청량리 과일 시장 지게차 까대기 출근하라는 문자다. 가겠다는 데는 오지말라고, 싫다는데 오라는...결과는 둘 다 안 가고, 돈은 못 버는...부조리인가...

대학 1학년 때 미팅 나가서 예쁜 애한테 after를 받고 두어 번 데이트를 했더니 못 생긴 과동기년들이 찾아가서 둘이 사귀냐고 훼방을 놓아서는...그때는 왜 그리 어리버리 했을까...구멍을 잘 못 찾아 헤매였던...엉뚱한 샛길 구멍을 헤매였던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교감, 부장 언행에 이 새끼는 말하는게 싸가지가 없겠네...부장은 뭐....저 선생들한테는 어떻게 보이려나...미투로 선생 몇 명이 구속되고 파면된 고등학교는 금요일에는 성폭력예방 자치 학급을 진행한다는 학사일정이던데...짤린 선생, 애들은 졸업하고 남겨진 잔흔들인가...

경험이라는게...꽤 오래 여러 학교에서 일했던 경험 탓이겠지...어떤 분위기로 어떻겠구나....

1년 내 구직해서 며칠을 못 버티는 에어컨회사, 물류회사, 냉동 냉장 창고, 4.5톤 7톤 건설현장 풍경도...

반가운 얼굴, 지나가는 개나 다를게 없는...받는 전화, 차단시키고...선택에 따라...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줏어놓아야 되는 새벽 4시 반...

이유와 목적을 두고 누구를 만나 어디를 나다니고...처박혀 모색 궁리하는....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와 있
다. 내 생의 열두 시에서 한 시 사이는 치열했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졌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 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으로도 기쁘다.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그때는 지구 북쪽 끝의 얼음이 녹아 가까운 바닷가 마을까지 얼음조각을 흘려보내는 날이 오리라 한다. 그때도 숲은 내 저문 육신과 그림자를 내치지 않을 것을 믿는다. 지난봄과 여름 내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아이들과 제비꽃을 얼마나 좋아하였는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보낸 시간이 얼마나 험했는지 꽃과 나무들이 알고 있으므로 대지가 고요한 내 손을 들어 증거해 줄 것이다.

아직도 내게는 몇 시간이 남아있다.

지금은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