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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이유 -박노해-
선긋기
2018. 12. 9. 00:30
내가 걷는 이유 -박노해-
텅 빈 밤거리를 날이 밝을 때까지 걸어
낮 시간에 잠깐씩 공원 벤치에서 눈 붙이고
다시 밤이면 내가 걷는 이유를 너는 모르지
좋았던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는 집을 나와
이렇게 홀로 떠도는 이유를 너는 모르지
밤이면 지하철역이나 보도에 누워 잠들지 않고
따뜻한 노숙자 합숙소를 찾아가 잠들지 않고
밤이면 눈뜨고 걷는 이유를 너는 모르지
나는 이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대로 망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내 하나뿐인 육신과 정신마저
이대로 망가지게 내버려둘 순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일하고 싶다
나는 내 힘으로 일어서고 싶다
나를 망가뜨리는 모든 것들과 처절하게 싸우며
끝끝내 나는 다시 일어서고 싶다
밤이면 내가 걷는 이유를 너는 모르지
눈뜨고 내가 걷는 이유를 너는 모르지
내 안의 불덩어리를 너는 정말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