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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추방된 자 -박노해-
선긋기
2022. 7. 31. 15:47
미래로 추방된 자. -박노해-
겪어선 안 될 일들을 겪었죠
만나선 안 될 이들을 만났죠
있어선 안 될 자리에 있었죠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난
너무 빨리 보내져 버렸죠
어떤 목소리는 나의 잘못이라 하고
다른 목소리를 괜찮다고 하고
그 목소리들마저 흩어져 버렸죠
인간에게 두려운 건 죽음이라지만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비참한 것은
자기의 땅에서 추방되고 잊혀지는 것이죠
스물일곱 살에 노동의 새벽을 쓰고
'얼굴 없는 시인'으로 쫓기다 붙잡혀
"이 사람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고자 사형을 구형한다"던
내 나이 서른일곱 살의 그날,
법정에는 울음과 고함이 퍼졌으나
난 환하게 웃었어요
가장 소중한 젊음을 어려운 시대의
내 조국에 바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이만하면 좋은 삶이고 죽음이라고
난 한번 웃었어요
무기수 독방에 갇혀 난 알았지요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비참한 생인
추방되고 잊혀지는 어둠 속에는
비밀한 빛의 통로가 있다는 것을요
그들은 나를 추방했으나
미래의 땅으로 보낸 줄을 몰랐을 거에요
그들은 나를 파묻었으나
미래의 가슴에 묻은 줄은 몰랐을거에요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나는
아스라한 제 눈빛에 일으켜져
다시, 빛으로 이끌려 내어졌어요
30년 후의 그날, 아니면
300년 후의 그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