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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 -김남주-
선긋기
2022. 8. 9. 20:15
그러나 나는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 -김남주-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야
어쩌다 나는 영어시험에서 일등을 했지
그때 우리 담임 선생님이 날더러 뭐라 했는 줄 알아
육사에 가라는 것이었어 군인이 되라는 것이었어
그래야 돈 없고 빽 없는 나 같은 놈에게도
출세 길이 훤하게 열린다는 것이었어
지금도 달라진 게 없지만 하기야 그때만 해도
총구가 대통령을 만드는 그런 시절이었는지라
군인들 끗발이면 누르지 못할 것이 없었지
그러나 나는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
그 끗발 좋다는 군인의 길로 들어가지 않았어
만약 그때 선생님 말씀대로 군인이 되었더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지금쯤
달라에 팔려 용병으로 월남 같은 나라에 가서
제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베트공깨나 작살냈을
역전의 용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공수부대에 편입되어 광주 같은 도시에 가서
자유 달라벌린 시민의 입에 총알깨나 먹이고
훈장을 받은 국가 유공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