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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섬 -황지우-

선긋기 2018. 12. 13. 10:43
솔섬 -황지우-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읍내 ‘나그네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집은 어디서 왔다요?” 성도 이름도 없는 여자가 묻는다.
“수상해?” “북에서 내려왔어.”
그녀가 나를 꼬집는다.
“너는 어디서 왔냐?”
여수에서 영등포로, 미아리에서 부산으로, 목포로, 완도로, 해남으로 왔다, 그녀는. 대흥사 여관동네에서 한 2년?, 있다 장터까지 왔다, 그녀는.
“너도 끝장까지 왔구나.”
“아저씨는 눈이 내 애인 닮았소잉.”
“뭐하는 놈인데?”
“중.”
밤늦게까지 그는 그녀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따라주고 암자로 올라가곤 했다, 그 중은. 산 전체가 단풍으로 色(색)이 탱탱할 때, 그는 通道寺(통도사)로 가버렸다, 그 중은. 그녀는 광주 공용터미널까지 가서 배웅했다, 그녀는. 슬픈 가을 산으로 돌아왔다.
“내가 환속한 그 중놈이야, 내가.” 쓰게 웃는다, 그녀가.
그녀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못생기고 늙은 이 작은 여자를 나는 넓은 가슴에 묻는다.
“집은 어디 간다요?”
“어란.”
“어란 어디?”
“솔섬.”
“거기 누가 있소?”
“아냐, 아무도 살지 않아.”
횃대로 올라가는 닭, 그녀는 이내 잠이 든다.
1983년 12월 24일, 나는 지상에서 한 여자를 재웠다.
첫 미사를 알리는 천주교 종소리에 깨어났을 때, 그녀는 없었다. 2만 원만 챙기고 내 호주머니에 3만 원을 넣어두고 간 그녀의 발자욱을 금세 눈이 지우고 있었다.
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나그네의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