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하여

3일째 안 씻고 5일째 안 나가는 날

선긋기 2018. 12. 23. 15:27

어제 그제는 삼겹살로 때웠는데, 오늘은 개밥 끓여먹는거 같은데 맛은 괜찮다...괜찮다..

매생이가 싸서 눈여겨보다 굴을 사야되니 지나쳐왔고, 원두커피와 책 두어권을 주문하려다 잔고가 부족해서 그만두고,

자격증 학원비는 그만둘 수 없기에 알아보는 중이고,

살았을 때는 뭐하고 죽고나서야 저렇게 떼로 몰려가 난리칠까, 위험한 일 안 했으면 젊은 놈이 힘든 일은 안 하려들고 논다고 비난이었을까,

내가 죽는다고 저렇게 난리쳐줄 인간들은 아니겠는데, 대학 때 본 어느 영화에서 이웃집 여자를 훔쳐보다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바람둥이 장기를 여러 사람에게 기증해서는 심장을 받은 남자가 죽은 남자의 와이프와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허망하고 우습게 죽으면 저 새끼는 죽을 때도 웃긴다 할까,

뉴스 기사에 저 놈 나쁜놈이라고 써갈기면 그걸 그대로 믿고 쌍욕질인데, 알지도 못한 사람 흉을 보면 그대로 믿는 것과 다를게 뭘까,

무슨 관계라고 어떤 대우를 해달라며 모지란 소리를 해대는데 아무 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정신병자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무슨 관계라서 뭘 어떻게 해주는 사이냐고, 그따위로 대접을 받고 싶은데 도대체 뭘 해주고 받고 있냐고, 이런 미친놈이 있나...피가 섞였다고, 선후배다고, 이웃이다고, 누구를 안다고...그러니까 그게 무슨 관계냐고...

3일째 안 씻고, 5일째 안 나가고 있는 날, 개밥을 끓여 맛있게 한끼를 때우고, 안 나가더라도 오늘은 씻어야겠다. 뜨거운 물 나오는데 그걸 귀찮아서...

밥그릇 -정호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