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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하는 습관 -최금진-
선긋기
2018. 12. 25. 17:46
패배하는 습관 -최금진-
간다, 패배하러 간다, 결론부터 말하는 버릇은 나의 용기
무덤에서 나와 손을 흔들고 있는 아버지를 뒤로 두고
쫒기듯, 깨지기 위해, 망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세상으로 돌아간다...
버스가 집이었던 적도 있었다, 길들이 나를 데리고 다니며 못된 것만 가르쳐주었다
생로병사가 빌어먹을 복지정책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면
타고난 팔자에 달려 있나니
안 올 거지
왜 와야 하나요
우리는 지는 사람, 싸우기도 전에, 적을 알기도 전에
슬며시 무릎을 꿇고 패배를 위해 무얼 변명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도가니탕을 좋아하는 아버지, 도기니가 닳도록 꿇어앉은 아버지
족발을 좋아하는 나, 발이 손이 되도록 비는 나
웃으면서 사과를 받아내는 사람들
웃으면서, 농담하면서 때리는 사람들
감옥에 넣지 않지만 무덤에는 넣는 사람들
닥치고 주무세요
다신 기다리지 마세요
아버지는 패배를 좋아하고
나 또한 패배를 잘 견딘다, 이를테면 매를 잘 맞는 아이처럼
가냐
네, 갑니다, 가고말고요, 엎드려 빌기 위해 또 가야 한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