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대하여

가려인생

선긋기 2019. 2. 9. 21:47
어릴 때 울면 애비가 죽었냐, 에미가 죽었냐며 나무래던 아버지 말이 거슬렸는데, 나이를 먹어보니 부모가 울어도 우는 사람이 드물다.

98세 모친이 설 전날 죽었다는 전화에 밀린 방세 입금해달라며 끊던 원룸 주인은 3일장을 끝내고는 엄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변함없는 모습이다. 마누라, 자식이 죽을 때는 다른 모습일려나,

정치인이 죽었다고 우는 사람들은 부모가 죽었을 때 서럽게 울었을까, 박정희가 총 맞아 죽었다고 땅을 치고 통곡하던 이들이 데모를 하고, 찬양하며 절을 하던데 부모 제사에서도 저럴까,

동지라고 했다가, 순식간에 웬수가 되어 반동 적폐로 공격해대는 모습, 그럴거면 동지라고 하지를 말던가, 형님 동생 선후배 고향을 들먹이지 말던가,

아무나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 누구 소식에 따로 만나자 할뿐, 동창이니 고향을 들먹여도 무슨 관계라고 지껄이는 우스운 인간들이 꺼려지고, 누가 죽고 사는 것도 슬프고 기쁘고를 달리한다.

무슨 관계라면 남보다 달라야 할 것인데, 그렇지도 못할거면 무슨 관계냐고 싸늟해져서는 가려 만나는 가려인생,

대전에 발령받아 딸 두 낳고, 부여 친정집에 가다 교통사고로 목뼈 두 개가 골절되어 20여 년 전신마비로 누워지낸다는 과동기, 대학때 친하게 지낸 여자애들 중 한명인데, 부여집에 놀러오라던걸 자꾸 미루다 졸업하고 두어번 만났었나, 군산에서 소식을 전해듣고는 안 좋은 모습 보이기 싫다해서 전화통화도 하지 않았다.

누가 장학사가 되고, 어디에서 잘 살고 못 살고 소식을 전해듣고도 굳이 연락처를 묻지도 않고, 같이 만나자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고는 다른 이야기였다.

위화의 소설 인생, 그만큼의 우여곡절 사연은 안고 사는 인생이 아닐까, 면도를 왜 안 했냐며 여전히 외모에 신경 안 쓰고 사냐면서 담배냄새 없애라고 화장품 스프레이를 뿌려주던데, 살아온 이야기를 술한잔에 덤덤하게 털어놓는 나이가 되어서는 그때의 보임이 스물살과 전혀 다른 아무나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가려인생으로 지내는 계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