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자전거 -김명국-

선긋기 2019. 8. 29. 11:09
자전거  -김명국-

자전거를 하나 갖고 싶다
차를 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비웃을지 모르지만
바퀴와 페달만 괜찮다면 브레이크만 이상 없다면
헌 자전거라도 상관없으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얼굴이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눈이 노루처럼 선한
긴 생머리의 여자라면 더욱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그 여자가 사는 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날이 늘어간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도 있으리
내가 나를 잊어버리게 참 하늘빛이 곱고도 맑은,
그녀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써서
책갈피에 꽂아두는 날도 생기게 되리

​멀리서 본 그 여자, 복숭아꽃을 닮은 여자
새참 때 미리 맞춰 광주리 머리에 이고
논둑길 따라 걸어가는
들꽃 이름을 나보다도 더 많이 아는 여자

​갈수록 보리가 푸르러갈 때,
저문 마을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가 지나간다면
빨랫줄에 널어둔 마른 빨래를 개며
앉아서도 들길이 훤히 다 내다보이는 툇마루에서
그 여자 무슨 생각을 할까

​아지랭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유채꽃밭에서
유채를 꺾어먹던 시절부터
당신을 좋아했노라고, 편지에 쓸 수는 없으리
나비가 훨훨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당신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소쩍새 우는 밤하늘에 은하수 별이 되고 싶다고
분홍색 편지지에 적을 수는 없으리

​그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
짐받이 뒤에 그녀를 태우고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갈 수만 있다면
구름이 뭉실뭉실한 산마루 언덕까지라도
다 달려가고 싶지만
산죽밭 끼고 강물 돌아 흐르는 물가까지 가서
소풍처럼 그녀와 점심을 먹으리라

​이것이 내 평화라고, 유토피아라고
강물에다 대고 물수제비를 띄우며
까르르, 소리지를 수도 있으리

​자전거를 하나 갖고 싶다
그녀가 살던 옛집 마당에도 살구꽃 피고
달빛 환하게 감꽃이 털리는 밤,

​어디든 달려갔다가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출 수 있는,
안마당에 괴어놓은 자전거 한 대가 바로
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