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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평야 -도종환-

선긋기 2019. 10. 11. 16:19
가을평야 -도종환-

흔들리면서 가을은 온다.
칼을 보여 다오, 친구여
그대 칼의 눈부심을 보여 다오.
그대가 벤 것을 보여 다오.

무너지면서 가을은 온다.
한 손에 칼을 들고
쓰러뜨린 것들 앞에 서서 돌아보던
풀 하나 흔들리지 않는
벌판을 보여 다오.

무너뜨리기 위하여 가을은 온다.
가을에는
내 살 네 살 베이는 것 아니면
만나지 말자, 가을에는
벌판이 아니면 만나지 말자.
무너지지 않는 한 가을은 가지 않는다
이 가을 한 자루 칼이 되어
네가 오너라,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