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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의 노래 -오성일-

선긋기 2019. 12. 25. 21:06

겨울 저녁의 노래 -오성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내가 경멸했던 것과 그것들의 편이었던 자들에게 승복해야 하는 때, 관중은 내 편이 적었고, 승부는 불공정했다 세상은, 가슴에 시를 품고 사는 자의 무대는 아니어서 처세는 누추하고 모멸은 쓰라렸다 뒤집어진 게처럼 굴욕은 백일하에 적나라했다

꾸고 싶지 않은 꿈이 자꾸 찾아오는 새벽이 있을 것이다 어긋난 나의 신념, 확연해진 나의 패배를 우두망찰 바라보며 쓸쓸히 웃을 뿐 다른 도리가 없으나, 그러나 나는 나의 마지막 생의(生意)를 모아 찬물에 뜬 돼지기름 같은 혐오로 저득의 득의(得意)와 관후(寬厚)를 비웃는다 증오는 때로 이토록 아늑하다

​하소연도 복수도 빼앗긴 채 먼지처럼 숨만 쉬며 살아갈지라도 업신여길 세상만 남아 개운하다 마음의 강바닥에 구르는 돌들, 물결에 몸 닳아 둥글어지지 않겠노라고 부딪쳐 날을 세운다 강물 위로 자욱하게 눈보라 퍼붓는 저녁, 길 지워진 벌판 위 납빛 하늘로 검은 이마의 새 하나 깃을 치며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