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마늘 -오탁번-

선긋기 2021. 1. 7. 04:29

마늘 -오탁번-

마늘밭 씨마늘처럼 왕겨 덮고
춥고 혹독한 겨울을 지나온 나는
소쩍새 울음처럼 마늘쫑도 싱그러운
잘 생긴 육쪽 마늘이 된 줄 알았다
참숯마냥 빛나던 머리칼
어느새 다 없어진 오늘,
아뿔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퍼마켓에서 파는
표백제 바른 깐 마늘이 되었음을
나는 이제 알겠다
눈물 날 만치 매운 마늘 맛 다 잃고
염치없이 이 나이를 살았고나
곡필과 아세 남의 일 아니고
성희롱 강 건너 불 아니었다
자살을 꿈꾸며 살았던
젊은 시절의 자화상에
스스로 개칠하면서 살아온
부끄러운 나의 생애,
기계충 앓는 밤송이머리 큰 눈망울로
창호지문 금간 쪽유리에
**** 모양으로 종이 오려 붙여
빠끔히 내다보던
천등산 아래 옛 마을로
이제 돌아가야겠다
잘못 살아온 생애 이쯤 반납하고
돼지똥 거름 냄새 이냥 풍기는
겨울 마늘밭의 추운 씨마늘로
이제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