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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박노해-
선긋기
2021. 1. 20. 10:16
마스크 -박노해-
새로운 전염병이 세계를 떠돌자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공포가 되고 말았다
전람회도 지역축제도 학교도 친교모임도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이 꺼려지고
사람이 경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복면이 되고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염병이 되고
인간은 서로가 불가촉천민이 되고 말았다
신종플루는 누구의 마케팅일까
새로운 전염병은 누구의 비즈니스일까
이제 우리는 마스크와 마스크의 키스가 되고
만남과 집회는 인터넷의 지저귐이 되고
우리 가족은 멸균실로 흩어져 투명창을 사이에 둔
지구를 망쳐온 수인들의 접견이 돼가는 걸까
괜찮다
우리의 삶은 이미 비즈니스의 만남이 되고
우리의 존재는 이미 유리 진열장에 수용되어
서로 영혼의 마스크를 낀 지 오래 되었으니까
인간은 인간에게 탐욕의 전염병이 되고
인간은 서로에게 폭탄이 된 지 오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