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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식들에게 -김광규-

선긋기 2021. 1. 22. 14:08

나의 자식들에게 -김광규-

​위험한 곳에서 아예 가지 말고
의심받을 짓은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대로 집에만 있으면
양지바른 툇마루의 고양이처럼
나는 언제나 귀여운 자식이었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인생이 힘들 것
무엇이랴 싶었지만
그렇게 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수양이 부족한 탓일까
태풍이 부는 날은
집안에 들어앉아
때묻은 책을 골라내고
옛날 일기장을 불태우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
자꾸 찢어버린다

​이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어느 날 갑자기
이 짓을 못하게 되어도
누군가 나를 기억할까

​어쩌면
그러기 전에 낯선 전화가
울려올지도 모른다
지진이 일어나는 날은
집에도 있는 것도 위험하고
아무 짓을 안 해도 의심받는다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
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평온하게 살지 마라
무슨 짓인가 해라
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
무엇인가 남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