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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꽃 -도종환-

선긋기 2021. 3. 4. 07:00

난꽃 -도종환-

지고 돌아와 망연히 앉았는데
난이 꽃을 피웠다
세상일로 참혹해하거나 말거나
난은 연둣빛 맑은 꽃을 피운다
남쪽에서 몰려온 태풍이 나무뿌리를 뽑고
간판을 떼어 땅에 던져도
잿빛 구름으로 덮었던 하늘을 누가
밤새 물걸레로 말끔히 닦아놓았다
너만 절박하냐고
매미는 있는 힘을 다해 울며 나뭇잎을 흔들고
작심하고 욕을 해대던 사람들도
대부분 휴가를 떠난 주말
억울해할 것 없다고
지는 날 많은게 인생이라고
난은 말없이 꽃을 피우고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