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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섬 -황지우-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읍내 ‘나그네의 집’에서하룻밤을 묵는다.“집은 어디서 왔다요?” 성도 이름도 없는 여자가 묻는다.“수상해?” “북에서 내려왔어.”그녀가 나를 꼬집는다.“너는 어디서 왔냐?”여수에서 영등포로, 미아리에서 부산으로, 목포로, 완도로, 해남으로 왔다, 그녀는. 대흥사 여관동네에서 한 2년?, 있다 장터까지 왔다, 그녀는.“너도 끝장까지 왔구나.”“아저씨는 눈이 내 애인 닮았소잉.”“뭐하는 놈인데?”“중.”밤늦게까지 그는 그녀에게 막걸리 주전자를 따라주고 암자로 올라가곤 했다, 그 중은. 산 전체가 단풍으로 色(색)이 탱탱할 때, 그는 通道寺(통도사)로 가버렸다, 그 중은. 그녀는 광주 공용터미널까지 가서 배웅했다, 그녀는. 슬픈 가을 산으로 돌아왔다.“내가 환속한 그 중놈이야, 내가.” 쓰게 웃는다, 그녀가.그녀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못생기고 늙은 이 작은 여자를 나는 넓은 가슴에 묻는다.“집은 어디 간다요?”“어란.”“어란 어디?”“솔섬.”“거기 누가 있소?”“아냐, 아무도 살지 않아.”횃대로 올라가는 닭, 그녀는 이내 잠이 든다.1983년 12월 24일, 나는 지상에서 한 여자를 재웠다.첫 미사를 알리는 천주교 종소리에 깨어났을 때, 그녀는 없었다. 2만 원만 챙기고 내 호주머니에 3만 원을 넣어두고 간 그녀의 발자욱을 금세 눈이 지우고 있었다.나는 어란으로 가기 위하여, ‘나그네의 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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