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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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행좋아하는 시 2025. 1. 8. 05:58
태백산행 -정희성-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태백에 가야겠다배낭 둘러매고 나서는데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지가 열일곱 살이야 열아홉 살이야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칠십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올해 몇이냐고쉰일곱이라고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조오홀 때다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좋을 때다 좋은 때다말을 받는다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괜스레 나를 보고늙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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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안개 -신경림-좋아하는 시 2023. 2. 11. 05:17
새벽 안개 -신경림- 사랑을 배우고 미움을 익혔다 이웃을 만나고 동무를 사귀고 그리고 더 많은 원수와 마주쳤다 헛된 만남 거짓 웃음에 길들여지고 헤어짐에 때로 새 힘이 솟기도 했으나 사랑을 가지고 불을 만드는 대신 미움을 가지고 칼을 세우는 법을 먼저 배웠다 법석대는 장거리에서 저무는 강가에서 이제 새롭게 외로움을 알고 그 외로움으로 노래를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 노래로 칼을 세우는 법을 배우고 그 칼을 가지고 바람을 재우는 법을 배운다 새벽 안개 속에서 다시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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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시 두 편좋아하는 시 2023. 1. 31. 04:07
나를 버리고 떠난 그년에게 -마광수- 네가 떠난지 벌써 일년이다 네 몸 속에다 내 자지를 집어넣고 네 몸을 잘근잘근 유린하고 싶다 왜 너는 나를 차버렸니? 내가 정력이 없어서니? 그래도 난 혓바닥만큼은 잘 썼다 두고보자 언젠가는 내 자지에 쇠구슬을 다닥다닥 박아넣고 너를 오르가슴으로 까무라치게 할 테니 부디 그때까지 죽지말고 잘 지내라 네가 오르가슴에 숨이 막혀 죽는 그날에는 석류같은 웃음을 터트릴테니 사라의 법정 -마광수- 검사는 사라가 자위행위를 할 때 왜 땅콩을 보지 속에 집어 넣었냐고 다그치며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있으므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하고 재판장은 근엄한 표정을 지어내려고 애쓰며 피고에게 딸이 있으면 이 소설을 읽힐 수 있겠냐고 따진다 내가 '가능성'이 어떻게 죄가 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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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가벗기 -마광수-좋아하는 시 2023. 1. 26. 11:51
빨가벗기 -마광수- 빨가벗고 살고 싶군. 모든 것 훨훨훨 벗어 던지고 홀가분하게 살고 싶군 자유도 싫군, 희망도 싫군, 입는 것은 다 싫군 언젠가 팔자에 없는 호텔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 무궁화가 다섯 개나 붙은 일류 호텔서 자게 되었을 때 난방장치가 너무 잘되어, 난 결국 홀딱 벗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영하 15도가 넘는 겨울인데도 춥지가 않았어 빨가벗고도 덥기만 했어 오들오들 떨면서 지나가는 거리의 사람들이 참 재미있었어 은근히 불쌍하게 보였어 참 그렇군, 옛날 궁중에선 궁녀들에게 목욕도 못하게 했다지, 빨가벗으면 성욕이 일어난다고 평생 옷을 못 벗게 했다지 빨가벗고 목욕하는 것은 왕이 예뻐하는 여자들의 특권이었다지 그래그래, 빨가벗으면 확실히 본능이 꿈틀거려 부자연스럽지도 않아, 신비스럽게 자유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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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서 -천양희-좋아하는 시 2023. 1. 15. 06:30
지침서 -천양희- 인생에서 피해야 할 것 세 가지는 소년 때 등과登科 하는 것 장년에 처를 잃는 것 말년에 가난한 것이며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네 가지는 쏘아버린 화살 내 뱉은 말 가버린 시간 게으름의 결과이며 인생에서 누려야 할 여가 세 가지는 겨울은 한 해의 휴가요 밤은 낮의 휴가요 비바람 치는 때는 시간의 여가이며 집안에서 새어나와야 할 소리 세 가지는 어린애의 울음소리 다듬이 소리 글 읽는 소리이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세 가지는 하늘에서 달만 한 것이 없고 음악에서는 거문고만 한 것이 없고 식물로는 버드나무난 한 것이 없으며 건강하게 사는 법 네 가지는 아이처럼 동심을 가질 것 거북이처럼 욕심을 버릴 것 원숭이처럼 많이 움직일 것 개미처럼 적게 먹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