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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평역에서 -곽재구-
    좋아하는 시 2018. 12. 8. 07:57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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