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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김광규-
우리는 우연히 형제로 태어나
병정놀이를 좋아하던 형은
훈장을 많이 탄 장군이 되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돌멩이에 페인트칠 하는 사병이 되었다
인생은 때로 그런 것이지
하지만 앞으로 달라질거야
제대할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우리는 또한 남매로 태어나
인형처럼 똑똑하던 누나는
돈 많은 회장댁 사모님이 되었고
울기를 잘하던 나는
안경을 쓴 근로자가 되었다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지
하지만 누구나 자기 길을 가는 거니까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결국 동포로 태어나
더러는 우리를 다스리는 관리가 되었고
개처럼 충실한 월급장이가 되었고
꽁치를 사 들고 가는 아줌마가 되었고
더러는 우리 손으로 지은 감옥에 갇혔다
언제는 달라지며 그대로 있는
역사는 어차피 이긴 사람의 편
그러나 진 쪽의 수효는 항상 더 많았지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되겠다고
나는 요즘서야 생각한다'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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