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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만나거든 -이용악-
    좋아하는 시 2022. 6. 26. 23:08

    나를 만나거든  -이용악-

    땀 마른 얼굴에
    소금이 싸락싸락 돋힌 나를
    공사장 가까운 숲속에서 만나거든
    내 손을 쥐지 말라.
    만약 내 손을 쥐더라도
    옛처럼 네 손처럼 부드럽지 못한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주름 잡힌 이마에
    석고처럼 창백한 불만이 그윽한 나를
    거리의 뒷골목에서 만나거든
    먹었느냐고 묻지 말라.
    굶었느냐곤 더욱 묻지 말고
    꿈 같은 이야기는 이야기의 한마디도
    나의 침묵에 침입하지 말아다오

    폐인인 양 시들어져
    턱을 고이고 앉은 나를
    어둑한 폐가(廢家)의 회랑에서 만나거든
    울지 말라.
    웃지도 말라
    너는 평범한 표정을 힘써 지켜야겠고
    내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그 이유를 묻지 말아다오

    욕망에 꼬들겨져
    길을 헤매고 있는 나를
    어느 붉은 전등 아래서 만나거든
    아는 체 하지 말라
    아는 체 하더라도 애인인 척 하지말라
    너는 그냥 아는 동생이라 핑계쳐야겠고
    내가 너를 버린 이유를
    그 이유를 거기서 따져 묻지 말아다오.

    너를 유혹하여
    옷을 벗기고 있는 나를
    어느 허름한 모텔에서 보거든
    그냥 그러려니 하라
    왜 벗기느냐고 더욱 묻지 말아다오
    사랑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내 단순한 욕망에 섞지 말아다오

    너를 껴안고
    잠이 들어있는 나를
    새벽 햇살로 보게 되거든
    깨우지 말라
    옆구리도 찌르지 말라
    우리가 내일은 무엇할까라는 말로
    나른한 이 새벽을 흐트리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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