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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애보다 더 긴 기다림 -도종환-
    좋아하는 시 2019. 2. 12. 10:51

    생애보다 더 긴 기다림 -도종환-

    밤사이에 산짐승 다녀간 발자국밖에 없는데
    누가 오기라도 할 것처럼
    문 앞에서 산길 있는 데까지...
    길을 내며 눈을 쓸었다
    이제 다시는 당산나무를 넘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지 말자 해 놓고도 못다 버린 게 있는 걸까
    순간순간 한 방울씩 녹아내린 내 마음도 흘러 고이면
    저 고드름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동안
    종유석 같은 고드름이 댓돌 위에 떨어져 부서진다
    기다리는 것 오지 않을 줄 늦가을 무렵부터 알았다
    기다림이란 머리 위에 뜨는 별 같은 것인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길이 눈에 덮여 지워지고
    오직 내 발자국만이 길의 흔적인 눈 속에서
    이제 발소리를 향해 열려 있던 귀를 닫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던 날들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천천히 지워진 다음 날 새벽
    아니 그 새벽도 잊혀진 먼 뒷날
    창호지를 두드리는 새벽바람소리처럼 온다 해도
    내 기다림이 완성되는 날이 그날쯤이라 해도
    나는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접은 것은 어쩌면 애타는 마음이나
    조바심인지 모르겠으나
    생애보다 더 긴 기다림도 있는 것이다
    기다림을 생애보다 더 길게 이 세상에
    남겨놓고 가야 하는 생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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