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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은 모름지기 -김남주-
    좋아하는 시 2019. 11. 4. 21:12
    시인은 모름지기  -김남주-

    공원이나 학교나 교회
    도시의 네거리 같은 데서
    흔해빠진 것이 동상이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고 나 이날이때까지
    왕이라든가 순교자라든가 선비라든가
    또 무슨무슨 장군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수염 앞에서
    칼 앞에서
    책 앞에서
    가던 길 멈추고 눈을 내리깐 적 없고
    고개 들어 우러러본 적 없다
    그들이 잘나고 못나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오만해서도 아니다
    시인은 그 따위 권위 앞에서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 굽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해야 할 것은
    삶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패배한 전사의 삶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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