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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낙산의 마음 -김광규-
    좋아하는 시 2018. 12. 7. 06:28

    크낙산의 마음 -김광규-

    다시 태어날 수 없어
    마음이 무거운 날은
    편안한 집을 떠나 ...
    산으로 간다
    크낙산 마루턱에 올라서면
    세상은 온통 제멋대로
    널려진 바위와 우거진 수풀
    너울대는 굴참나뭇잎 사이로
    살쾡이 한 마리 지나가고
    썩은 나무등걸 위에서
    햇볕 쪼이는 도마뱀
    땅과 하늘을 집삼아
    몸만 가지고 넉넉히 살아가는
    저 숱한 나무와 짐승들
    해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는
    꽃과 벌레들이 부러워
    호기롭게 야호 외쳐 보지만
    산에는 주인이 없어
    나그네 목소리만 되돌아올 뿐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도
    깊은 골짜기에 내려가도
    산에는 아무런 중심이 없어
    어디서나 멧새들 지저귀는 소리
    여울에 섞어 흘러 가고
    짙푸른 숲의 냄새
    서늘하게 피어오른다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없고
    바위틈에 엎드려 잠잘 수 없고
    낙엽과 함께 썩어 버릴 수 없어
    산에는 살고 싶은 마음
    남겨 둔 채 떠난다 그리고
    크낙산에서 돌아온 날은
    이름 없는 작은 산이 되어
    집에서 마을에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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