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가 절정이다 -천양희-좋아하는 시 2020. 11. 12. 15:55
그때가 절정이다 -천양희-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것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 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에다 밑줄 긋던
그때를 생각했다
제 그림자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 보며 걸어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울공원 -천양희- (0) 2020.11.14 시와 건축 -천양희- (0) 2020.11.14 새가 있던 자리 -천양희- (0) 2020.11.12 내 시 어떤가요 (0) 2020.11.03 아우라지 -박세현- (0) 2020.11.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