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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기 -도종환-
    좋아하는 시 2021. 1. 24. 12:39

    악기 -도종환-

    언덕 위에서 누군가 트럼펫을 분다
    그때 우리가 불었던 악기도 저런 소리를 냈었다

    ​서툴지만 뜨거웠던 소리
    열정이 아니면 음악이 아니라고 믿었던 소리

    ​미숙하지만 노래 한 곡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소리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소리

    ​몸속으로 악기소리만을 서둘러 채우고는
    민망하여 허겁지겁 악기를 챙겨 넣으며

    ​지퍼를 올리던 날들
    너무 이르거나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아

    ​스쳐가고 만 사람들 저 악기소리 속에는
    그런 순간 그런 얼굴이 들어 있다

    ​이제 나의 악기소리는 매끄럽지만
    열정의 뜨거운 숨소리는 없다

    ​내가 뿜어내는 음표들은
    세련된 활이 되어 날아가지만

    ​그때 그 풋풋함은 없다
    언덕 위에서 누군가 젊은 트럼펫을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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