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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이진명-
    좋아하는 시 2021. 4. 17. 00:47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하는가
    보라,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첫여자도 첫키스도 첫슬픔도 모두 돌아오지 않는다
    얼마나 눈부신가
    다시는 안 돌아오는 한 번 똑딱 한 그날의
    부엉이 눈속의 시계점처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다

    그때는 몰랐다
    안 돌아오는 햇빛, 첫서리 뿌린날의 새벽 새떼
    그래서 슬픔과 분노의 흔들림이 뭉친 군단이 유리창 터뜨리고
    벗은 산등성을 위돌며 눈발을 흩뿌리던 그것이
    흔들리는 자의 빗줄기인 줄은..
    없었다 그 이후로
    책상도 의자도 걸어논 외투도
    계단도 계단 구석에 세워둔 우산도
    저녁 불빛을 단 차창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고
    없었다, 없었다 흔들림이

    흔들리지 못하던 많은 날짜들을 스쳐서
    그 날짜들의 어두운 경험과
    홀로 여닫기던 말의 문마다 못을 치고
    이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흔들리지 못하던 나날들의 가슴에 금을 그으면
    놀라워라, 그래도 한곳이 찢어지며
    시계점처럼 탱 탱 탱 피가 흐른다

    보고 싶은 만큼, 부르고 싶은 만큼
    걷고 걷고 또 걷고 싶은 만큼
    흔들림의 큰 소리 넓은 땅
    그곳으로 여행 가려는 나는
    때로 가슴이 모자라 충돌의 어지러움과
    대가지 못한 시간에 시달릴지라도
    멍텅구리 빈소리의 시계추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누가 여행을 돌아오는 것이라 틀린 말을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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