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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그릇이 되기 위하여 -정호승-좋아하는 시 2022. 10. 9. 12:40
빈 그릇이 되기 위하여 -정호승-
빈 그릇이 빈 그릇으로만 있으면
빈 그릇이 아니다
채우고 비웠다가
다시 채우고 비워야 빈 그릇이다
빈 그릇이 늘 빈 그릇으로만 있는 것은
겸손도 거룩함도 아름다움도 아니다
빈 그릇이 빈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채울 줄 알아야 한다
바람이든 구름이든 밥이든 먼저 채워야 한다
채워진 것을 남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비워져
푸른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채울 줄 모르면 빈그릇이 아니다
채울 줄 모르는 빈 그릇은
비울 줄도 모른다
당신이 내게
늘 빈그릇이 되라고 하시는 것은
먼저 내 빈 그릇을 채워
남을 배고프게 않게 하라는 것이다
채워야 비울 수 있고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으므로
채운 것이 없으면
다시 빈 그릇이 될 수 없으므로
늘 빈 그릇으로만 있는 빈 그릇은
빈 그릇이 아니므로
나는 요즘 추운 골목 밖에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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