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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최금진-좋아하는 시 2018. 12. 25. 18:02
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최금진-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러나 끝자리를 분석하거나 홀짝의 조합을 분석하는 일은
어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
왜 사느냐, 를 왜 로또를 사느냐, 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이 늦은 밤에 왜 또 여기로 왔는가, 자신에게 몰래 질문을 던지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찍는다
로또를 사지 않는 10%의 고소득층은 얼마나 좋을까
로또를 사지 않아도 천사가 지켜주니까 하지만 얼마나 나쁜가,
빈익빈 부익부의 나라에서 왜 사느냐, 을 묻지 않아도 되니까
오십이 더 넘은 사내는 누가 볼까봐 손을 가리고 찍는다
술 냄새에 절어 들어온 사내는 앉자마자 묵상을 한다
갓 스물을 넘은 청년은 줄을 서지 않는 자들을 무섭게 흘겨본다
순서를 어기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앞서 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하다
번호에 대한 집념은 때 묻지 않은 종이와 같아서 어떤 검은색이든 쪽쪽 빨아들인다
예수를 부르고, 조상님께 기도하고, 아이 생일을 떠올리며
아무도 답하지 못하는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숫자를 체크해나가는 손들
두툼한 돈 뭉치를 한 번만이라도 남의 멱살처럼 당당하게 움켜잡아보고 싶은 불쌍한 분노들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다만 살 뿐이다,
그러므로 로또를 안 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숫자일지라도
단 한 번도 뭔가에 평생을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좋아하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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