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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금강 -도종환-좋아하는 시 2019. 8. 15. 15:57겨울 금강 -도종환-
오늘도 걸어서 강언덕까지 갔다 왔다
들에 이미 와 기다리고 있던 바람에 금세 귀가 얼었고
산을 끼고 도는 길마다 빙판이었다
어느새 십년 세월이 흘렀다 이 길에 나선 지
몇은 죽고 떠난 사람도 여럿 되었다
많은 이들과 헤어졌고 더 많은 이들을 새로 만났다
그래도 늘 같은 소리로 우리 가는 길 옆에 있어주던 강물이
오늘도 작은 시냇물까지 다 데리고 나와 동행해 주었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억새들이 모여 주었다
한때는 내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 말들이
내일이라도 금방 현실이 되어 우뚝 설 것 같았고
넘치는 열정으로 해도 달도 다 내 가슴에
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다시 못 만날지 모르는
그런 뜨거움으로 밤을 새우는 이들 많아서
별이 빛났다 크나큰 몇 번의 실패로
많은 이들이 떠나고 이제는 옆에 섰던 이들마저
먼발치로 물러나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으면서
내 손을 놓고 쏜살같이 앞질러가며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보란 듯이 몸 바꾸는 이들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걷는다
이루지 못했으나 잘못 살지는 않았다
어쩌면 갈라진 이 땅 더러운 시대에 태어난 내가
갈 수밖에 없는 가지 않고는 달리 길이 아니던
나는 그런 길을 걸어온 것뿐이었다
그 더운 가슴이 식고 박수소리 또한 작아져
몇은 풀이 죽었지만 애당초 박수소리 때문에
몸 던진 길이 아니었다
떠나던 이가 던진 말처럼
유연해져야 한다고 나도 그 충고를 받아들이지만
떠날 수는 없다
눈물이 떠난다는 생각을 얼핏 떠올렸을 때
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애착이나 억울함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부정하고 부정해도 끝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마음 하나 아주 여리고
아주 작던 그래서 많이도 고통스러웠던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그런 것 하나를
역시 버릴 수 없어서 아팠다
오늘도 걸어서 강언덕까지 갔다 왔다
어린 금강 줄기 백년도 한 순간이던 강물
처음 이 길에 나설 때 우리의 언약을 알아듣던 그 강물
유장해야 한다고 오래오래 깊이깊이
가야 한다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내 몸의 잘디 잔 실핏줄 하나에까지 흘러와
그물처럼 나를 휘감던 강물
그곳에 다시 눈발이 치고 눈보라가 마른 다리를 때렸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것은 없으나
어떤 하찮은 것도 쉬이 이루어지진 않으리니
나는 멈추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