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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한용국-
    좋아하는 시 2020. 4. 13. 13:11

    4월 -한용국-

    애인과 섹스하다 돌아보니 사월이었다
    여자는 할퀴거나 깨물기를 즐겨서
    멍든 자리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오랜 집중이 요구되었던 체위들 사이로
    폭설이 내리는 풍경이 삽입되었다가는
    산산조각으로 깨져나가곤 했다
    목련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데
    애인은 몇 시 기차를 타고 떠나갔을까
    열차표를 손에 쥐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보니 서른이었다
    애인과 섹스만 했는데도 사월이 오고
    방구석은 어느새 절벽이 되었고
    책상과 침대가 까마득한 곳에 떠 있었다
    누가 겨울 내내 우물을 파놓은 것일까
    애인과 섹스한 것은 분명히 죄는 아닌데
    그러면 내가 녹아 물이 되어 흘러야지
    생각했을 때 어머니가 달려들어와
    나이는 뒷구녕으로 쳐먹냐고 욕했다
    그래 누가 내 몸에 고운 흙을 채워다오
    꼬불꼬불 꽃 한 송이라도 피워 올리게
    애인과 섹스하지 않아도 사월이 왔을까


    피도 눈물도 없이 저리도록 아름다운 혁명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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