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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곽재구-좋아하는 시 2018. 12. 8. 07:57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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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아소에서 무슨...일상에 대하여 2018. 12. 8. 01:44
누군가의 유치원이 교육기관이냐고, 탁아소 아니냐는 의견에 공감이 된다. 중학교 교과과정에서 보면 유아, 초등 엉터리 영어를 가르치고, 고등학교 영어에서 보면 중학교에서 잘못 가르쳐 올려보내니 이걸 바로잡기가 힘이 들던데, 유치원, 초등에서 웃기는 엉터리 영어를 왜 가르치나 싶더만, 어린이집, 유치원이 저렇게나 많은 보육비 보조금을 해처먹는데도 교육기관이라며 국민을 협박하는게 우스운게, 그게 탁아소지 무슨 교육기관이라고, 음미체 같은 놀이말고 제대로 가르치기나 하나, 애 맡길 데가 없어 보내는 곳이니 탁아소가 맞는 것 같은데, 유치원은 교육청에서 관리, 어린이집은 지자체에서 관리,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통제가 가능할까, 선출직, 공무원, 지역단체가 유착되어 좋은게 좋은거라고 눈 먼 돈 꽁돈 형님 동생 잘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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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지마세요.일상에 대하여 2018. 12. 8. 01:24
시원한 날씨다. 처박혀 아랫목에서 책 읽다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술취한 놈, 술처먹자는 놈, 미운 놈, 쓸데없는 전화를 받지 않고, 혼자서 빈둥거리며 보낸 하루다. 왕따, 자발적 왕따, 싫어하든 좋아하든 뭐라 씨부리든 꼴린대로 내뱉든 아랑곳없이 혼자 놀다가 김남주가 0.7평 독방에 가둬놓으니 가지고 놀거라고는 좆밖에 없더라던데 아직 짱짱하니 어디 휘두르다 들어와도 될 것인데, 다른 가지고 놀 것이 많은 자유로운 영혼의 몸뚱아리라서 불러주는 사람도 거절하며 빈둥거리고 있다. 혁명을 도모하고, 정치,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면거 여기저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들쑤시며 취해서 돌아다녔을까, 어디 흘린거 아무거나 줏어먹는 비위가 좋지도 않고, 뭐가 궁금했을까, 인간에 대한 예의였을까, 아무 여자나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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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방에 와서 -김남주-좋아하는 시 2018. 12. 8. 00:58
다시 그 방에 와서 -김남주- 제대로 팔다리를 뻗을 수 없는 0.7평짜리 이 방이 7년 전에 내가 1심에서 ... 징역 2년을 받고 앉아 있을 때는 한 삼 년 도나 닦고 나갔으면 좋겠다 싶은 절간의 선방 같다고 생각했는데 펜도 없고 종이도 없고 책이라고는 달랑 예수쟁이들이 기증한 성경밖에 없었던 이 방이 그후 서너 달이 지나고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누워 있을 때는 하룻밤 느긋하게 묵고 가고 싶은 나그네의 역려 같다고 생각했는데 서른 넘은 나이로 15년 징역보다리를 들쳐메고 다시 와 이 방에 앉아 생각해보니 이제는 무덤이구나! 생사람 죽어 살아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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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벌써 -김남주-좋아하는 시 2018. 12. 8. 00:57
내 나이 벌써 -김남주- 땅 위에 태어나서 나 하늘 높이에 이념의 깃대 하나 세우지 못한다 가난뱅이들이 부자들의 마을에 가서 고자질할까 봐 그런 것도 아니다 ...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다 하늘 아래 태어나서 나 땅 위에 계급의 뿌리 하나 내리지 못하고 있다. 부자들이 가난뱅이들 마을에 와서 행패를 부릴까 봐 그런 것도 아니다 내 나이 벌써 마흔다섯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나 할 일이 없는가 이렇게도 없는가 까마득한 세월 10년 전 그날처럼 나는 이제 지하로 흐르는 물도 되지 못하고 지상에서 먹고 살 만한 동네에 살면서 이런 말 저런 글 팔고다닌다 그것도 허가난 집회에서나 그것도 인가난 잡지에서나 내 나이 벌써 이렇게 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