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서정주-좋아하는 시 2018. 12. 7. 11:48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서정주- -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는 까투리 메츄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낯이 붉은 처녀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 안기어 오는 소리 큰놈에겐 큰 눈물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야기 작은이야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거리며 안기어오는 소리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는 산도 산도 靑山도 안기어 드는 소리
-
노동의 새벽 -박노해-좋아하는 시 2018. 12. 7. 11:27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
손무덤 -박노해-좋아하는 시 2018. 12. 7. 11:21
손무덤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참 손만은 꺼내 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
꼬 막 -박노해-좋아하는 시 2018. 12. 7. 11:17
꼬 막 -박노해-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南道의 살림 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
-
지리산 -김지하-좋아하는 시 2018. 12. 7. 11:10
지리산 -김지하-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샆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저 대 밑에 저 산 밑에 지금도 흐를 붉은 피 지금도 저 벌판 저 산맥 굽이굽이 가득이 흘러 울부짖는 것이여 깃발이여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한자루의 녹슨 낫과 울며 껴안던 그 오랜 가난과 돌아오마던 덧없는 약속 남기고 가버린 것들이여 지금도 내 가슴에 울부짖는 것들이여 얼어붙은 겨울 밑 시냇물 흐름처럼 갔고 시냇물 흐름처럼 지금도 살아 돌아와 이렇게 나를 못살게 두드리는 소리여 옛 노래여 눈 쌓인 산을 보면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샆을 보면 노여움이 불붙는다 아아 지금도 살아서 내가슴에 굽이친다 지리산이여 지리산이여
-
시원한 추위일상에 대하여 2018. 12. 7. 09:30
며칠 술을 안 마시니 간이 조금 쫄깃해진 느낌인데, 꽤 오랜 기간 술을 멀리해야 어느 정도 회복이 될 것 같다. 담배도 덜 피고 있고, 책은 쉬엄쉬엄 읽는데, 여자는 뭐 절집 중같으니 사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날씨가 추워져서 새벽운동을 망설이다 말았는데, 아침이 되니 시원한 추위다. 캐나다는 건조해서 추위가 덜 느껴진다던데 뒷산이나 한 바퀴 돌다올까, 이런저런 상념과 모색을 정리하는 아침이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치관 관점이 달랐겠지, 뭘 해달라 시도 때도 없이 성가시게 하던 이들이 입장이 달라져 돌변하면 피건 물이건 그걸로 끊어버린다. 저런 종자였던 것을, 개나 소나 진보 좌파라고 병신짓하며 들러붙는 모지리 쓰레기들이 뭐라 내뱉는 말도 저런걸 상대해줘야..